한국성서침례교회의 해외선교 역사자료
한국성서침례교회 친교회 해외선교 30주년을 맞이하게 됨을 하나님께 영광돌립니다.
그리고 해외선교 30주년을 맞이한 한국성서침례친교회 선진 목사님내외분들과 모든 성도님들께
축하드립니다. 지난 30년 동안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해외선교에 기도와
물질로 동참해 주셨던 귀한 헌신을 기억하고 감사를 드립니다.
초대 선교사님이셨던 김원배선교사님이 남기시고 가신 피눈물의 흔적을 생각합니다.
김원배선교사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되셨습니다. 이제 놀라운 열매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부족하나마 한 발짝 한 발짝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영원한 소망을 향해 달려가려 합니다.
해외선교30주년을 맞이하여 지금까지 해외선교를 담당하시고 수고하셨던 해외선교위원회
모든 목사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일본의 정치(日本の政治)
일본정치의 중추(中枢)는 수상관저정치로 일본나라 헌법에 정해진 체제에 기준하여 실행하고 있다.
때문에 일본은 입헌주의에 기초한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의 행정・사법은 헌법과 국회가 정한 법률이하, 명문화된 법령등에 기준하여 실행.
그래서 일본은 법치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국헌법은 주권이 국민이 존재하는 국민주권으로 정한다.
또한, 정치상의 권력을 행정권・입법권・사법권의 삼권으로 분리, 각각의 내각・ 국회・ 재판소로
분리된 권력분립체제를 정한다. 국회를 국권의 최고기관으로 하는 의회제민주정치를 행하고,
국회와 내각의 협동(協働)에 의한 의원내각제를 채택.
더욱이,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세습군주인 천황을 두고 있다.
천황는 국정에 관한 권능(權能)을 갖지 못함을 헌법으로 정해져 있으며 내각의 조언이나 승인에 의해
「국사수행国事行為」을 행한다.
일본국헌법은 또, 지방자치를 정하고 있다.
일본의 지방자치는, 전국을 47개지역으로 분명하게 구분된 도도후겡(都道府県)과 도도후겡을 중심으로
몇 군데의 지역을 분리하여 시정촌(市町村)의, 2 단계의 지방공공단체에 의해 담당하고 있다.
모든 도도후겡과 시정촌은, 각각 의사(議事)기관인 의회와 집행기관인 수장(首長;도도후겡지사, 시정촌장)을 세운다.
지방공공단체는 법률의 범위안에서 조례를 제정(制定)할 수 있다.
일본헌법의 3대원칙으로 내세우는 것은, 국민주권, 기본적 인권존중, 평화주의등이다.
일본의 정치는, 위의 3대 원리와 그 근본이 되는 개인의 존중(개인의 존엄)을 기조(基調)로서 시행하고 있다.
***종교일반(宗教一般)
Ⅰ。일본의 종교(日本の宗教)
일본에 있는 종교의 신자수는 , 문부과학성의 종교통계조사에 의하면
신도(神道)계가 약1억700만명, 불교계가 약9,800만명, 기독교계가 약300만명, 그 외 약1,000만명,
합계2억900만명으로 일본의 총인구의 2배정도의 신자수이다.
신도계와 불교계의 인구만해도 2억에 가깝다.
이렇게 된 요인은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통계조사는 앙케트에 의한 것이며. 필연적으로 자단체(自団体)가 신자수를 많이 신고한 경향이다.
*일본고대로 내려온 민속신앙의 기반위에 자연풍토속에서 자라난 년중행사나, 제례(祭礼)등을 통해
많은 일본인이 칠고삼(七五三), 초지(初詣), 또는 계절마다 열리는 축제(祭り)를 신사(神社)에서 행하고
에도시대(江戸時代)의 사청제도(寺請制度)의 영향으로, 결혼식이난 장례식등을 불교식으로 행하는 등,
복수의 종교에 걸쳐서 의례(儀礼)에 참가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침례(세례)를 받은 시점에 신자가 되는것에 반해, 일본에는 그 종교의 신(神)을 숭배하면
신자라고 여겨, 씨자(氏子), 단가(檀家)의 가정에 아이가 새로 태어나면 그대로 신자수에 추가가 된다.
또 사망해도 신자명부에서 제외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일본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어느 종교. 종파의 신앙을 갖고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시 않고 있으며,
또 각 개인도 자신들의 신앙을 새삼스럽게 의식하는 일이 적다.
그러므로 미흡하다고 할 수있는 조사방법에도 항의하는 일이 적고 또한 실생활에서도 불화가 일어나는
일도 적다.
1)신불습합(神仏習合)
일본에서는 신도(神道), 불교(仏教)의 신도가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
단지, 일본에는 옛날부터 신불습합(神仏習合싱크레디즘의 일종)이 행해졌기 때문에 명치(明治)초기에
신・불 분리가 정해진 후에도 신도나 불교의 구분을 정확히 하지 않는 면이 남아 있다.
예를 들면 가미다나(神棚-신도의 단)를 숭상하는 가정에도 불단(仏壇)이 있는 집이 많고,
불교사원의 단가(檀家)이면서 동시에 신사의 씨자(氏子우지코)인 가정이 많다.
이것이 신도를 믿는 사람과 일본의 불교에 귀의(帰依)하고 있는 사람들을 합해서 2억인을 넘는
수치가 된 것이다. 바꾸어말하면, 신도나 불교란 두개의 종교가 일본에 존재한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신도가 불교를 흡수하여 혼연일체되어 토착화된 신앙이 되었다(또는 지금도 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역사적으로 보나 지금 현재로서나 신도나 불교는 그 기능을 분담하고 있고 양자를 합하여
한개의 종교관을 구성하고 있다고 말 할수 있다.
2)신도(神道)
신도(신사신도-神社神道)는 명확한 교의(教義)가 존재하지 않고 엄밀한 입신규정(入信規定)도 없다.
씨자(氏子)입문이 여기에 가깝지만 특정의 신사의 씨자이지 않는 일본인이 가미다나를 설치, 신사에 기부,
제사(祭事)에 참가하는 등 이러한 것을 보고 신자라고 보는 경향이 많다.
3)불교(仏教)
일본의 불교는 대부분이 대승불교(大乗仏教)이다.
카마쿠라시대(鎌倉時代)에 보급되어진 불교(鎌倉仏教)는 오늘날의 불교의 기초가 되었고,
일본역사에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현재까지 신자수도 많고 일본의 불교도(仏教徒)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역사를 거스려보면 불교는 6세기에 일본에 전래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불교는 전체적으로 계율(戒律)이 엄격하지 않고 타종파와 드러나는 논쟁도 적다.
본래는 출가(出家)하는 일로 정식적인 불교도가 되는데, 많은 일본인들의 경우는 자신의 장례를 통해
계명(戒名)을 받고 불교에 입문한다. {정토진종(浄土真宗)에는 종파의 특정상 계명은 사용하지 않는다}
4)기독교(キリスト教・基督教)
사료(史料)에 의하면 확실히 일본에 기독교가 전해진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예수회의 프란시스코 자비엘에 의한 포교이다. 전국시대(戦国時代)가 한창인 1549년의 일로,
당초(当初)는 거의 자비엘이 속한 예수회의 선교사가 포교활동을 시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자비엘과 예수회에 속한 선교사들은 처음에 가고시마(鹿児島)에 들어가 거기서 포교활동을 시작했다,
그 후 프란시스코회등에서도 일본에 들어와 포교활동을 했다.
이것은 거의 카톨릭이였으며 당시는 아직 신흥(新興)의 가르침인 프로테스탄트는 거의 없었다 .
당초, 세력확대에 전념한 각지의 대명(大名)들은 최신의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유럽인들을 기본적으로
환영하였고 기독교도 비교적 무리없이 확대되었다.
대명(大名)들 중에는 새로운 사상인 기독교에 흥미를 가지고 입신(入信)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한 사람을 그리스탄대명(キリシタン大名)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산=훼리페호(サンーフエリぺ号)
사건등, 몇가지의 사건을 계기로 권력자들이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거기다 천하통일을 제압한
토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해 금지(禁止)되고 말았다. 그 후로 에도시대(江戸時代)가 맞이하여
기독교는 일시적으로 해금(解禁)되었으나 얼마 못가서 금지되어 막부(幕府)가 쇄국정책(鎖国政策)을 펴므로
선교사는 물론 일반 외국인들도 입국할 수 없고 국내의 기독교는 후퇴하게 되었다.
당시의 일본인 기독교인은 폐교(棄教)를 하든지 숨어서(은둔) 기독교 생활(지하교회)을 해야만 했다.
숨어서 기독교생활을 한 신자들은 비밀리에 신앙을 전파하여야 했다.
에도막후(江戸幕府)와 유럽의 각국중에 기독교 국가인 오란다(네들란드), 오란다상관(商館)을 통해서만
무역을 했다. 오란다는 막후(幕府)의 기독교금교정책(基督教禁教政策)을 존중한 탓으로 막후말까지 일본에
기독교가 확장되는 일은 없었다. 기독교금교정책은 당초 명치정부(明治政府)에도 이어졌지만 1873년 몇가지의
제한사항 가운데서도 포교활동이 공적으로 인정해 주었다.
1889년에 발포된 대일본제국헌법(大日本帝国憲法)에 의하면 신교(信教)의 자유(自由)가 명문화(明文化)되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남으로 일본에는 거의 완전한 형태로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었다.
현재 기독교의 문화는 일본문화에 여러가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신 자체는 카톨릭, 기독교, 정교회(正教会)를 모두 합쳐도, 일본인 전체의 1%정도라고 말하고 있다.
문화청의 종교연감에는 신자수의 숫자가 약1%라고 되어있다.
또 미국합중국의 CIA의 조사에 의하면 일본의 기독교도는 약2%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다.
어찌 되었건 이 통계는 구미(欧米)등, 기독교문화권과 비교하여 대단히 낮다.
또 근접한 아시아 각국과 비교해도 이례적(異例的)인 저비율이다.
일본의 기독교단체의 대다수는 유럽, 미국, 한국에 비해 소규모이다. (특히 프로테스탄트교회)
5)유교(儒教)
신도, 불교와 더불어 종교로서 의식은 적지만 장례(葬儀), 사생관(死生観)을 중심으로 유교도
큰 영향을 남겼다. 선조령(先祖霊)등의 관념(観念)은 현재에는 불교에 흡수되어 있지만 본래는 불교철학과
모순되는 부분이 있고 고대(古来)의 민간신앙(民間信仰)는 유교에 유래(由来)한다.
위패(位牌), 법사(法事)등 선조공양(先祖供養)에 관한 중요한 습관은 유교가 기원(起源)이다.
6) 그 외의 종교(각종 신흥종교가 다수있음)
숫자는 타 종교에 비해 아주 적지만 일본국내에 외국인 주체의 종교시설을 가진 교단은 복수 확인되었으며
그 나름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의 결혼등으로 인해 개종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래종교에는 이슬람교신자가 약12만명, 바하-이-교(バハーイー教)신자가 약1만2000명,
힌두교신자가 약5000명, 유다교신자가 약2000명 시크(シク)교신자가 약2000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Ⅱ。 일본인의 종교관(日本人의宗教観)
옛날부터 일본에 있어서 평안시대(平安時代)에서 명치유신(明治維新)이전은 정토진종(浄土真宗)을 제하고
신불습합(神仏習合)이 일반적으로 신도와 불교가 갈라지지 않은 경우가 일반적이였다.
사원내에 토리이(신사입구에 세운 기둥문-鳥居)가 있거나 팔번대보살(八番大菩薩)과 신사(神社)의 신(神)을
보살이라 부르는 전례등으로 이름을 남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에도시대에 호적관리을 목적으로 불교종파의 어느 쪽의 사원(寺院), 또는 신사(神社)에 귀속(帰属)이
의무로 되어 여러가지의 습관이 생겼지만 지금은 희미한 상태이다.
또, 칠오삼(七五三)、결혼식이 신사에서 거행하게 된 것은 명치이후의 일로서 종문개종(宗門改め)이
기원(起因)은 아니다. 二宮尊徳(니노미야손도구1787-1856)의 이야기를 정리한「니노미야옹야화(二宮翁夜話)」
라는 서책(書物)에는 종교다원주의(宗教多元主義)를 표시하는 듯한 비유적인 이야기도 적혀있다.
세상에 참된 진리는 단 하나 뿐이지만 그 진리에 가까이 들어가는 길의 입구(入口)는 얼마든는 있다.
불교, 신도, 또는 불교에도 천태종(天台宗), 정토종(浄土宗), 정토진종(浄土真宗), 선종(禅宗)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러한 것들 중 어느 하나도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단지 길에 붙어있는 입구의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후지산에 올라가려면, 요시다(吉田)입구에서, 스바시리(須走り)입구에서,
고텐바(御殿場)입구에서{지명 이름}등 어디에서 올라가든지 최종적인 정상에 오르면 똑같은 장소다.
이것을 틀린 목적이라도 도착할 수 있는 데는 여러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입구가 여러개 있어도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장소는 똑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이것들을 각각 다른 길이라 말하며 진리가 얼마든지 있다고 해석하기 쉽지만
원래 불교사상은 기원전에 한 사람의 부처석가에 의해 깨쳐진 것으로, 그렇게 나타난 많은 교의(教義)중에서
근본경전(根本経典)을 선택해 내어, 각각의 종파로 갈라져 지키고 전해내려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Ⅲ。현대(現代)
요미우리신문에 2005년8월6일, 7일 거행된 「종교」에 대한 여론조사에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선택한 사람이75%를 넘고., 「믿고있다」고 선택한 사람은 23%로
1979년도 조사의34%와 비교하면 11% 감소했다.
「신(神)이나 불(仏)에 의지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54%에 달하는 사람이 「있다」라고 대답했다. 44%의 사람이 「없다」라고 대답했다.
{「종교를 믿지 않는다」를 선택한 사람중에도 47%가 「있다」라고 답했다. }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 종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35%의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한다」를 선택했고, 60%의 사람들이 「생각지 않는다」고 선택했다.
더욱이, 현대의 일본인 대다수는 실제로는 종교의례에 참가하고 있지만 특정한 종교조직에 대한
귀속의식이 희미하고, 자기자신은「무종교」라고 생각하는 일본인도 상당히 많다.
이것은 일본인이 신이나 불교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나름대로 믿고 있지만 특정한 종교조직에 전인격적으로 귀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2006년 현시점에, 일본에는 신도계(神道系)88,877단체, 불교계(仏教系)85,994단체,
기독교계(基督系)9,330단체, 각 종교39,858단체가 존재하고 있다.
***일본성서침례친교회역사
1949년, 미국성서침례친교회의 각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해서 복음선교가 시작,
철저한 성서중심에 의해 세워진 근본주의적 보수침례교의 원리와 실천을 이어받은 교회가
각처에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선교시작과 동시에 성서신학교를 개설하여 그 곳에서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고 있다 .
1971년에 일본성서침례친교회의 각 교회의 협력을 통해 영원한 비젼인 해외선교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을 최우선적, 구체적인 해외선교의 길이 열렸다.
국내에서는 각각의 지방교회나 선교사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전도하는 개척의 길이 열리고 있다.
친교회의 특징은 근본주의적 보수침례교도의 믿음에 선, 가시적, 지방적, 자유독립으로 조직된
각 교회가 구령과 새로운 교회를 목표를 두고 협력하는 「주의 교제・主の交わり」이다.
1. 일본B.B.F의 연혁
1949년6월 침례성서친교회소속 최초의 선교사 포수다(Issac F. Foster)선교사가
미국으로부터 일본에 도착, 다음 해인 1950년 3명의 선교사가 일본에 도착하여 선교가 시작됨.
현재, 지바현(千葉県), 군마현(群馬県), 시즈오카현(静岡県)을 시작하여, 홋카이도우(北海道)부터
규슈(九州), 오키나와(沖縄) 까지 교회형성을 진행하고 있음.
2013년 3월 현재 전국에 전도소를 포함하여 92개 교회가 있음.
해외선교도 열정을 가지고 임하고 있음.
2. 특색
・자유주의 신학과 싸운 침례교 근본주의 신앙에 굳게 선 믿음의 사람들로 설립,보수침례교의 교의(리)를 굳게 지키고 있음
・자신들의 신앙을 중요하게 지켜 교회형성을 하는 관계로,
어떤 초교파적인 전도협력에도 원칙적으로 참가하지 않음.
3. 교의(리)
・근본주의 침례교를 견지(堅持)・단립(単立)・독립주의
・정교분리의 원칙을 취함
4. JBBF 각기관
* 종교법인 일본침례성서친교회이사회(2013년 이사장 ; 미사와 타카오・三澤隆男목사)* 일본침례성서신학교(교장 ; 우에다 아키라・上田晃목사)
* 해외선교의원회사무국(위원장 ; 마이켈 바겟・マイケル・バーゲット선교사)
파송선교사 ; 인도네시아 3가족, 대만1가족, 홍콩(중국)1가족, C국대륙1가족
우간다1가족, 하와이(일본계미국인선교중심)1가족. 계8가족
* 국내선교위원회사무국(위원장 ; 에노모토 마사히로・榎本昌博목사)
국내개척교회 ; 16지역(개) 전도소
* 고요다선교센타
* 침례교 장애자전도협력회
*** 한국성서침례교회 친교회를 통한 일본선교사역
1. 파송 선교사 ; 박점득. 정미숙부부
목사안수 ; 1992년 3월22일(행당동성서침례교회담임 강인규목사)
선교사인준; 1992년3월26일(춘계전국목회자친교회・불광동BBC)
2. 교회개척 ; 1992년3월8일(주일) 첫 예배
성인9명, 어린이9명
3. 동경제일성서침례교회 창립예배 ; 1992년 4월19일(주일)
강사 ; 강인규목사(행당동성서침례교회담임목사)
협력 ; 일본동경성서침례교회(담임;가미야먀 유우지上山雄治목사)
참석 ; 77명
제목 ; -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다 -
4. 선교20년의 열매 ; 총180명
구원받고 침례에 순종한 자
재일한국인 및 조선족과 중국인 ; 80명
재일동포 및 일본인 ; 20명
구원받은 자
재일한국인 및 조선족과 중국인 ; 70명
재일동포 및 일본인 ; 10명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
그러나, 이들의 마음만은 어느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예수님의 마음" 과는 먼 나라 일본입니다. 그래서 더욱 눈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영혼들이 불쌍히 여겨지는 것입니다.
1992년4월19일!
"여기에 역사가 시작되다-ここに歴史が始まる-” 라는 표어로 이곳 일본땅에
KBBF 의 일본선교 첫 열매인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1년전의 일본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전적인 계획이었으며 인도하심 그 자체였습니다.
전에도 지금도 주님 오실 그날까지, 얼마나 복음이 필요한 나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강팤하여 복음을 듣지않는 나라,
일본!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금방이라도 뒤돌아 서고 싶기도 했고
어느새 낙담하고 있는 연약한 나 자신의 모습을 종종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도 변함없으시기에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우상의 나라 일본*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어려운가는 이들의 사상에 이미 자리하고 있는,
우상의 숫자이며 종류입니다.
1. 800만이 넘는 우상을 숭배하는 일본(일본의 종교 참조).
무엇이든 내게 덕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형체가 있다면 우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저들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기대고 싶어합니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저들의 사상으로 납득하기란 힘들기 보다는 오히려
이해자체가 안된다는 표현이 더 가까울 것 같습니다.
형상이 있는 대상을 선호하는 것이 저변에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생각조차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소위 카리스마적인 교회들의 변명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일본인들은 특정 사람조차도 마음대로
신격화시키는 것이 이들의 일상 생할 중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 일본인들의 정신속에 있는 자신도 죽으면 신이 된다는 종교심이
저들에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일본인의 종교관 참조).
종교심은 있지만 신앙심이 없는 일본인들!
그러므로 저들이 구원에 이르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시간과 인내와 신뢰관계가 필요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일본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과 인내하심에는
일본 사람들도 구원을 받는다는 기적적인 사실입니다.
이들이 구원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신뢰관계를 유지하므로 인내,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나 자신이 인내의 한계에 종종 부딪히기도 합니다. 내려놓고 싶은 유혹들이 엄습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랑의 확신을 거듭, 생각하면서 이 불쌍한 영혼들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사람들이 구원받기에 힘든 부분들이 죄에 대한 것입니다.
저들의 마음속에도 눈에 보이는 죄가 아니면 죄인이란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답니다.
구령상담을 하다보면 죄 문제에서 저들은 이해를 할 수 가 없다고 합니다
죄인이라는 자체만 인정되면 저들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데는 그다지 힘들지는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영접하고 저들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은 침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침례에 순종한다는 것이 일본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생 전부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때문에
집안식구들의 허락를 물어보는 것을 보면, 일본인들의 문화와 습관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종교심에 강한 일본사람이다 보니 구원받고 침례에 순종하면 이 구원을 잘 간직하는
좋은 특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의 내용*
감사하는 것은 21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일본인들이 선교를 통해 구원을 받고 침례에 순종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선교가 일본영혼들만의 선교가 아님을 또한 간증드립니다.
많은 재일한국인 및 아시아인 영혼들이 있습니다. 역시 외국이기에 일본에 있는 한국교회를 찾아 옵니다.
그러나 거의 99%가 초교파 교인(?)들 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성서적인 구원을 받지 못한 영혼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성서적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고 교회를 나오는 일본인 사람이상으로
구령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앞에서 죄인됨은 알게하고 성서적 침례를 말하고, 거듭남의 진리를 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진리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약속된 구원의 말씀을 통하여
지금까지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았으며 성서적 침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지면을 통하여 감사드리는 것은
일본선교의 특수성을 이해해주시고 지금까지 변함없이 선교헌금으로
일본선교에 동참해 주시는 모든 목사님들과 교회에 주 안에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선교시작과 교회개척후 2013년4월까지
친교회목사님(사모님) 스물여섯분께서 자비량으로 일본을 다녀 가셨습니다.
목사님 내외분들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일본선교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서 협력해 주셨고
많이 사랑해 주시고 많은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특히 선교 초기 어려울 때에 당시 행당동성서침례교회 담임 목사님이셨던
강인규목사님내외분께서는 2000년도까지 일곱번이나 일본을 방문해 주셔서 격려와 사랑을
쏟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섯 번(한 분), 두 번(세 분) 방문해 주신 목사님도 계십니다.
이상과 같이 목사님들의 관심과 배려,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기쁨으로 일본선교를
감당할 수 있었음을 고백하며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강인규목사님의 격려편지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 (중략)
저희부부가 일본에 머물고 있는 동안 박선교사님부부를 비롯해서 여러 성도님들까지
그야말로 정성을 다해 주심으로써 저희 부부는 얼마나 즐거웠고 행복했는지요!
내가 그곳에서 말씀을 증거하며, 구역집회에서 말씀으로 가르치면서 성도님들을 위로격려하며
말씀위에 세워드리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말씀을 받는 성도들 보다
저희부부가 더 즐거웠고 행복했다고 느껴졌습니다.
--중략--
그건 그렇고, 박선교사님!
이번에 일본에 가서 한 사람, 한 사람 성도님들을 대하고 보니 박선교사님 부부가 선교목회를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달라서 여러 교파에서 적(籍)을 두고 믿음의 생활을 하던 사람들인데도
어느정도 믿음의 공통점을 이루고 함께 교제하며 예배를 드릴수 있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도 그런 모습을 볼수 있어서 아름답게 보였고 흐뭇했습니다.
--중략--
2000년 5월27일
작은 종 강인규드림 "
위의 모든 감사의 제목들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립니다.
*날마다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2011년3월11일 오후2시46분! 동일본대지진 강도9도!
아직도 세계를 경악으로 몰았던 "동일본대재앙"의 아픔은 그대로입니다.
이후 유학생들은 한 명도 없이 귀국했습니다(지금도 한 명도 없음).
성도들은 주일에도 직장과 일터에 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동경제일성서침례교회」가 세워진 장소 건물은 약15여년 전부터 비가 세어
사택은 비만 오면 잠을 잘 수가 없을 정도였으며, 교회 또한 몇 년 전부터 오염물과 비로인해
힘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2011년 12월중순 지금의 장소로 이사하여 새롭게 「동경성서침례교회」로 이름을 바꾸어
출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이 땅에 세운 교회를 통하여 영혼들이 구원받는
역사를 계속하고 계심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일본안에서 보아도, 일본밖에서 보아도 열매 맺기가 힘든 일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을 향하여 소원을 두고 계신 하나님이 계시기에
오늘도 감사과 기쁨으로 새로운 각오로 일본선교에 대한 사명을 점검합니다.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데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명하신 일이기에 한국성서침례친교회 교회들의 관심과 목사님내외분들의 기도와
모든 성도님들의 사랑과 격려에 힘입고,
이곳에서 구원받은 영혼들과 함께 인내하며 일본선교사역은 계속되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본선교의 비화(秘話)입니다.
일본선교의 비전은 주님의 꿈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일본에 오기 십수년전부터 세분의 목사님께 그 꿈을 주셨습니다.
먼저, 일본선교는 주님의 꿈에서 강인규목사님의 꿈이 되었습니다(1973년).
그리고 오랜 신앙의 동역자이자 친구이셨던 가미야마 유지(上山雄治)목사님께 꿈이 전염되었습니다.
1985년8월14일부터 16일까지 일본 "국제청소년센터 동산장(東山荘)"에서 개최되었던
일본성서침례친교회 하기성회 때 강인규목사님께서 초청되셨고,
미국방문후 몸이 불편하심에도 불구하고 격려차 하기성회에 김우생목사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그 후 1989년 김우생목사님께서 동일한 장소에서 열린 일본성서침례친교회 여름사경회
강사님으로 오셨습니다(8월14-17일).
존경하는 세 분 목사님의 꿈과 비젼이 오늘의 일본선교가 있게 된 초석입니다.
지금도 세 분 목사님의 뜻을 가슴에 품고 겸손히 기도하며 순종하려 합니다.
***일본선교을 위한 기도제목입니다***
기도제목...1. 교회 건물구입을 위해서
2. 일본영혼들의 영혼구령을 위해서
3. 복음이 왜곡되지 않고 담대하게 증거될 수 있도록
4. 일본선교를 위한 헌신된 동역자를 위해서
5. 교회 필요가 충만하도록
6. 감사와 행복함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이 모든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도 선교 사역이 이루워지고 있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일본선교을 위하여 후원해 주시는 사랑의 손길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동경에서 한국성서침례교회 친교회 파송 선교사
박점득. 정미숙(박소명. 박현) 드립니다.
주의 2013년 7월3일 일본동경선교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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